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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세계사

세계사)서아시아의 역사

by 메그앤조 2020. 4. 14.

bc1200년~ ac600년경

기원전 12000년 이전에는 히타이트, 이집트 세력이 우세했지만 이후 지중해 동부에서 페니키아인과 헤브라이인들이 강하게 등장한다.

이후 기원전 700년경 아시리아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철제 무기, 전차를 앞세운 기병들의 활약이 컸고, 이로써 이집트와 바빌로니아를 정복하는 쾌거를 이룬다. 이것이 최초의 서아시아 통일이다.

이후 기원전 600년경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가 두번째로 서아시아를 통일하는데
이때 다리우스 1세 왕은 중앙집권체계를 형성하고, 피지배민족에게 관용을 크게 베풀어 200년동안이나 번영을 한다.
중앙집권체계는 도로와 역참제를 통해 형성했다.

하지만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 지역을 침략하여 멸망당하고 분열되어 그리스에 박트리아와 그쪽 동부에 파르티아를 세운다. 박트리아는 그리스 문화를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고, 파르티아는 중계 무역을 통해 중국과 인도를 연결짓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3세기 초 사산 왕조의 페르시아가 파르티아를 없애면서 이란에서 메소포타미아 땅까지 차지하는 엄청난 대제국을 건설하지만 651년 이슬람 세력에 의해 멸망당한다. 이때 미술과 공예가 매우 발전하여 로마에서 한국과 일본에 이르기까지 문화가 전파되었다.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지정한 나라고, 사산왕조때에는 조로아스터교에 더해 크리스트교와 불교의 결합이 된 마니교도 나오게 된다.

 

#페니키아
고대 가나안의 북쪽에 있던 문명. 현재 레바논, 이스라엘, 시리아에 위치한곳이며 최초로 갤리선을 이용한 무역을 했다고 한다. 초기의 철기 시대때 지중해 문명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단일민족인지는 분명치 않고, 고대 그리스처럼 도시 국가를 형성한 문명이다. 페니키아는 알파벳을 최초로 이용한것을 널리 알려져 있고, 또한 전파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있어서 전쟁도 많았고, 그만큼 문화도 다양하다 할수있다. 미케네 문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구전된다. 이들의 종교는 가나안 지역의 신들을 믿은것으로 알려져있고, 기원전 2000년즈음에는 대부분은 주신이 바알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후 그리스 신화에 혼합된다.

 

#헤브라이
히브리라고도 하고,원래는 유대인을 멸시해서 부른 말이다. 현재 유대인을 의미한다. 유일신 야훼(여호와)를 섬기며, 기원전 13세기경 흉년을 피해 살고있던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명령으로 그들의 원래 고향인 가나안으로 지도자 모세를 따라 돌아오려 했고, 수십년간 사막을 떠돌면서 가나안을 향해 나아갔다. 이들의 종교는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의 바탕이 된다.

 

#솔로몬
이스라엘의 3대 왕이며, 솔로몬왕 이후 이스라엘은 분열된다. 솔로몬의 지혜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지혜가 뛰어나 유명한 아기 찾아주는 일화도 있고, 현재 아프리카 땅의 지도자인 시바 여왕도 찾아와 지혜를 시험하고 감탄하며 떠났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나 솔로몬은 아내와 후궁이 약 900여명이 넘을 정도로 많은 여자를 사랑했고, 이스라엘의 특성상 유일신 여호와를 섬겨야 함에도 이방나라 아내까지 들여오다보니 이방의 신들까지 섬기는 말년을 보내게 된다.

 

#조로아스터교(배화교)
예언자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에 기반을 둔 유일신아후라 마즈다를 믿는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로, 종교적이자 철학적인 기반을 두며,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진다.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때 페르시아 전역으로 전파가 되었고, 이상하게도 유일신을 믿는 종교였지만 고대 토착 종교와 합쳐지면서 여러 남신, 여신 등을 믿는 모습이 된다. 헬레니즘의 영향도 받았다. 이후 유일신 신앙이 확립이되었고, 사산 왕조때 더욱 더 강한 국교로 성장한다. 유일신 사상, 내세관, 선과 악으로 이뤄지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슬람교,유대교,그리스도교, 불교까지 매우 큰 영향을 미친 종교이다. 이후 이슬람이 중동의 큰 종교로 차지하게되면서 교세가 줄었지만 현재도 15만명 가량의 신자들이 있다.

 

#다리우스 1세
고대 페르시아의 전성기를 이끈 왕으로 아케메네스 왕조 출신이다. 많은 땅을 차지하며 중앙집권체계도 이뤄갔지만 현재의 올림픽의 시초가 있게된 마라톤이 나온 배경의 마라톤전투의 패배를 당한 왕이다. 무도보다는 행정조직가로서 유명하며, 교통로도 잘 건설하는 등 각종 제도들을 잘 정비한 왕이다. 식민국가에는 관용적인 정책을 펼쳤다.